2011년 3월 13일 일요일

완벽의 추구 - 탈-벤 샤하르

완벽의 추구

완벽주의 VS 최적주의

완벽주의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있다. 무엇이든 꼼꼼하고 세심하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에 대한 인식과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해 결벽증을 가진 사람과 같은 인식이 그것이다.

완벽주의자는 끝없는 탐욕과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욕망에 기인한다. 어떤것을 이루어 내도 성취감을 갖지 못하고, 감정의 파도를 피한다. 표정에는 눈물도 없고 기쁨도 없다. 약해보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또한 거부한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기계처럼 취급한 나머지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하고 거북한 삶을 살아간다.
그에 반해, 최적주의자는 탐욕과 욕심이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기초를 쌓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정의 폭포수를 온 몸으로 맞으며, 눈물이 흐르면 그것을 고이고 흐르게 둔다. 기쁘면 세상을 가진 사람처럼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맛보며, 설사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스스로의 시간에 고이 묻어두었던 눈물과 웃음을 조심스레 꺼내 맛을 본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안정된 상태는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그가 내게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강하게 인지해야 한다. 영화나 잡지에서 보는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 것을 연기하는 사람들 마저 완벽하지 못함에 대해 몸서리치도록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그 누가 아는가?
현대 사회를 살면서 슬픈 감정을 숨기고 눈물을 삼켜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게 배우고 있다. 항상 기쁘고 행복하고 단 1초라도 슬픈 감정이 든다면 마치 우리의 인생이 실패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현실에 살고 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질병에 대한 면역체를 갖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그 훈련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중력이 우리는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느끼지 않은 것처럼 혹은 있지도 않은 일처럼 여긴다면 술로 힘든 상황을 지워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일이 일어났을때는 아무런 면역체계를 갖지 못하고 그 더러운 감정을 다시 느껴야 한다.
중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안으로 흘려들여 보낸다. 기다리거나 기대했던 일들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선 실망감, 좌절감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그 감정을 피하거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 자기 안으로 흘려 보낸다.
그 다음 상황을 이성적으로 재구성해본다. 실패를 했다면 그 상황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고 얻을 교훈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의 성장에 얼만큼의 자양분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관계에서 실망을 했다면 자신이 그 관계를 삶 속에서 너무나 크게 비중을 잡고 있는건 아닌지 자신을 덜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재구성한 그 상황을 배우고 다음번에는 실패하지 않거나 관계를 재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러한 훈련은 감정에 대한 면역체계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극단적 예를 들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관계에서도 자신을 더 사랑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실패에 대해 더 대담해지고 안정된 길을 추구하는 길을 벗어버리고, 보다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고 용감하게 쟁취할 수 있다. 평소에는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도하지도 못할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시험을 모험으로 생각하는 면역체계를 가진다면 긴장되고 떨더라도 부딪힐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뇌는 더 말랑말랑해졌다. 보다 많은 성취감을 맛보고 큰 그리움을 느끼며 슬픈만큼 기쁘다. 책을 추천해준 순희에게 참 감사하다. 그 계기로 인해 나는 또 강해졌고 지혜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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